Home » 바울신학원 » ‘초기한국 신학의 흐름’-바울신학원 석태준 목사

바울신학원 한국교회사 ‘초기 한국신학의 흐름’에 대한 강의가 5월 13일 뉴저지 포트리에 있는 바울신학원(원장 김동수 목사)에서 진행됐다. 석태준 목사(롱아일랜드 나눔의교회)는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은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90년대 당시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19세기와 20세기 신학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근본주의에서부터 복음주의, 정통주의, 신정통주의와 자유주의에 이르는 진보신학이 있다.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나누는 기준은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 때문이다. 보수는 성경의 무오를 믿지만 자유주의는 이성과 모순되는 것은 거부하고 신화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 

세계역사에서 근대화를 이끈 주요인물이 4명 있다. 생물학에 있어 다윈, 심리학의 프로이트, 철학에 있어 니이체, 사회주의 사상을 시작한 마르크스가 이들이다. 근대화의 주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좋다는 것을 각인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도전은 다음과 같다. 
1. 진화론은 창세기 내용과 심한 충돌을 일으켰다. 
2. 과학만능주의로 이적을 거부했다. 
3. 성서비평에 대한 문제, 편집(Redaction)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근본주의(Fundamentalism)가 이러한 배경하에서 나오게 됐다. 근본주의는 다윈, 프로이트, 니체, 마르크스가이끈 근대화에 대해 절대 양보할 수없는 다섯가지를 강조한다. 
1. 성경무오
2. 동정녀 탄생
3. 십자가 구원
4. 몸의 부활
5. 재림이 바로 그것이다. 
타협할 수 없는 내용으로 주장한다. 

복음주의는 17세기에는 경건주의로 18세기는 청교도주의로 불리었다. 경건주의는 삶을 강조하는 모라비안–> 웨슬레로 이어진다. 이것은 미국의 대각성운동으로 연결된다. 20세기에는 신복음주의가 출현해 문화, 이성, 사회참여를 강조한다. 
복음주의가 강조한 것은 1.회심 2.십자가 3.선교 등을 강조하며 성경은 하나님의 여러 계시 중 가장 주요한 계시로 받아들인다.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의 경향은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이었다. 

신정통주의는 근본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선택한 노선이다. 칼 바르트가 대표적이다. 신정통주의 주장은 
1. 예수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2. 사람을 통해서 주어진 말씀이며 
3. 선포를 강조한다. 
현재 미국의 리버티대학은 근본주의로 분류되고 웨스터민스터 신학교는 복음주의로 프린스턴은 신정통주의로 분류된다. 

한국 초기선교사는 가장 보수적인 순서부터 보면 미국남장로교–>호주장로교–>미국북장로교–>캐나다장로교 순이다. 한국의 선교지형은 보수적인 서북지역은 남북 장로교가 대세였고 진보적인 서울지역은 북장로교와 캐나다 장로교가 대세였다. 

아펜젤러는 독일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은 메노나이트 출신이었다. 언더우드는 뉴브룬스윜신학교를 졸업하고 초교파적인 선교를 강조한 선교사였다. 마포삼열은 평양신학교 1대 교장으로서 한국에 가장 큰 신학적인 영향을 미친 분이다. 십자가의 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복음주의자이다.

네비우스는 근본주의에 속한다. 이들은 청교도 보수주의로 주일성수, 주초금지, 성경무오를 믿는 사람들이었다. 무디의 부흥운동, 특리 무디의 전천년설 종말론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 

한국에서 1920-30년대에는 ‘프린스턴 신학’이 한국장로교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40명 선교사 중 16명이 프린스턴 출신이었다. 찰스 핫지와 벤자민 워필드가 대표적이다. 한국인들이 미국에 유학을 갔던 시기가 1920-30년대인데 당시 프린스턴 분위기는 분리가 대세였다. 김재준, 한경직, 박형룡 등 3명이 함께 프린스턴에서 유학을 했으나 각자 다른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당시 프린스턴 신학교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박형룡은 메이첸의 제자가 되면서 한국 보수주의의 대표가 된다. 

이외 한국에 신학적인 영향을 미친 분들은 다음과 같다.  
1. 이용도의 신비주의 
2. 김교신 무교회주의
3. 정경옥 자유주의
4. 김재준의 진보
5. 박형룡의 보수주의

정경옥은 협성신학교, 미국 노스웨스턴에 있는 게렛신학교에서 유럽의 자유주의를 처음 소개한 슐라이에르마허와 리츨 등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 신학은 이용도의 신비적 체험을 신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김재준은 김익두의 설교를 통해 회심을 체험한다.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기위해 일본 신학책을 읽고 일본 청산학원에서 공부한다. 그곳에서 칼바르트를 접하고, 미국 프린스턴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메이첸 수업을 모두 듣는다. 이후 송창근 목사가 있는 곳에서 함께 공부한다.

이후 한국에 와서 바르트 신학을 소개하며 한국교회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게된다. 
신학지남이란 잡지에 기고를 많이 했다. 김재준 목사는 일관된 신학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한국교회를 위한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박형룡은 평양숭실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에 유학해 메이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5년 과정을 3년에 마치고 당시 가장 보수적인 곳으로 알려진 남침례교신학교에서 변증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보수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 아빙돈 주석을 발행했으며 장로교가 분열을 거듭하는 가운데 보수의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장로교에는 3회의 큰 분열이 있었다. 
1차분열은 신사참배문제로 
2차분열은 박형룡과 김재준의 자유와 보수에 대한 입장차이로 장로교신학교와 조선신학교가 분리된다. 
3차분열은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문제로 통합과 합동, 장신과 총신으로 구분된다. 소위 연동파와 승동파로 불리기도 한다.

-정리: Ston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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