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고아사랑 » [영상] 고아들의 아버지 윤치호 선생을 이어받다.

“구약성경에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유엔에 과부의 날은 지정돼  있지만 고아의 날은 없습니다.”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수천명의 고아들을 돌보는데 일생을 바친 사람이 있다.  YMCA를 통해 목공일을 배워 19세 때 ‘나사렛 목공소’를 차린 윤치호 선생. 그는 목포에서 목공소 일을 시작했으나 너무 많은 고아들을 보고 이들을 돌보기 위해 ‘공생원’을 시작한다. 당시 다카오 마쓰다라는 일본 음악선생의 소개로 윤학자 여사와 함께 공생원을 이끌어 간다.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윤치호와 윤학자는 하늘나라로 갔으나 지난 7월 8일 뉴욕선한목자교회(박준열 목사)에서 그 아들인 윤 기 선생이 아버지의 뜻을 기리며 유엔  유네스코 ‘고아의 날’ 제정을 위한 설명회를 가졌다. 아버지의 일생을 짧고 담담하게 밝히는 윤 기 선생의 고백은 고아들을 향한 끈끈한 사랑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 윤치호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설교로 47회에 걸쳐 일본경찰에 끌려가 취조를 당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고아들을 버려두고 떠날 수 없어 아버지 윤치호는 인민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민재판에 참여한 이들 중에 한 사람도 그의 죽음에 박수를 치는 사람이 없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부탁한 인민위원장을 맡는 바람에 나중에 국군 방첩대에 끌려가 많은 고생을 겪게된다. 이후에 아버지의 행방은 지금까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어머니 윤학자는 일본에서 암에 걸렸을 때 수술비가 있으면 고아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며 수술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가서 죽음을 맞는다. 윤 기 선생은 어머니 사후 ‘어머니는 바보야’라는 책을 출간해 ‘사랑의 묵시록’이란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아들인 윤 기 선생은 26세에 ‘공생원’의 원장을 맡았다. 버려진 아이들을 가슴에 안고 서울 한남동, 암사동, 상계동에 직업훈련소도 만들었다. 동경에 고아들을 위한 사무실을 만들었는데 재일동포 노인들이 무명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오사카, 교토, 고베, 동경에 조국의 환경에 맞는 양로원을 만들기도 했다.

일본에서 36년간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윤 기 선생은 한국과 일본이 함께 ‘유엔고아의 날’을 제정하면 더 많은 고아들을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2012년부터 유엔 고아의 날 제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오는 10월 유엔총회에서 이 안건이 통과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10월 15일(월), 16일(화) 양일간 뉴욕 맨해튼에서 세계고아의날 청원대회(15일)와 윤학자기념 한미일음악회(16일)도 개최한다. 김영진 전 의원은 유엔고아의날 제정을 위한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이외에도 홍정길, 손봉호, 이희호, 박원순, 박종순 등 한국에서 많은 사람이 협력하고 있다. 10월 15일 행사는 오후 2시부터 재팬소사이어티(333 East 47th St)에서, 16일 행사는 오후 3시부터 구세군100주년기념회관(120 West 14th St)에서 각각 열린다. (최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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