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공동체의 성서적 기원과 실천적 대안'(차정식 교수)을 읽었다. 올해 3월에 출간된 책이다.
저자는 기독교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으로 ‘가라타니 고진’의 책을 읽으면서 생긴 의문과 개인적으로 교회생활의 경험때문이었다고 밝힌다.
지은이는 21세기 한국교회 공동체성에 대해 사상누각의 상태에서 벼랑끝을 향해 위태롭게 달려가는 쇠락과 해체일로의 상태임을 강조한다.
책의 흐름은 구약성서를 통한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을 먼저 추적해간다. 그리고 신약성서 속에서 기독교 공동체의 모델을 찾아간다. 이어 오늘날 기독교 공동체의 성서적 대안을 제시한다.
공동체(community)를 뜻하는 희랍어 단어에는 ‘코이논’과 ‘코이노니아’란 말이 깔려있다. 희랍어 개념에 기초하여 공동체를 체계적으로 이해한 최초의 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polis)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국가공동체를 최고의 선을 지향하는 가장 중요한 공동체로 파악했다.
저자는 국내에서 공동체 운동에 투신한 여러 사람을 언급한다. 그 가운데 철학자 김영민(www.jangju.org)을 독특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공동체의 종교적 맥락을 가장 창의적으로 묘파한 사상가는 일본 출신의 인문주의자인 ‘가라타니 고진’으로 소개한다. 그의 논지 가운데 가운데 가장 특기할만한 개념으로 ‘교통 공간’을 소개한다.
고진은 프로이트의 통찰을 빌어 종교가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억압해온 것은 ‘안과 밖의 구별이 없는 교통공간’이었다고 본다. 프로이트의 해석대로라면 모세는 백성들에게 사막에 머물것을 강요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살해되었다. 그는 약속의 땅을 가나안 땅이 아니라 교통공간인 사막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기독교 공동체의 구약성서적 기원에서 저자는 에덴과 부부공동체를 먼저 언급한다. 저자는 천지만물의 창조 이야기는 바빌론의 창조이야기와 그 영향관계가 적잖이 언급되는데 이는 고대 근동의 서사 가운데 동일한 질문의 코드를 공유하며 이 세상을 질서정연하고 유의미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의욕이 반영되었음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태초의 공동체 모델로 제시된 가족이 혈연간의 유대가 아닌 타자와의 결합으로서 제시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공동체는 개별적 존재의 권위를 존중하고 동일체가 되려는 유혹을 뿌리치며 타자성을 견지할 때 유지되지만 마치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처럼 ‘나=타자’의 동일성에 강박될 때 관계 자체가 허물어지는 위기가 초래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노아와 방주공동체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의 조건으로 동물의 고기를 먹되 그 생명의 표상인 피째 먹지말라는 단서조항을 언급한다. 이에대해 저자는 인간이 육식을 하게 된 의도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를테면 인간이 부득불 사냥이나 축산을 통해 고기를 취하되 이에대한 죄책감을 생명에 대한 긍휼과 연민의 차원에서 경감하고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동기가 반영되었을 것으로 본다.
저자는 노아 홍수가 세상의 전적인 타락상을 증명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물고기들 역시 동물이지만 그들은 이 대홍수에도 끄떡없이 살아남게 됨으로써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노아 방주공동체의 특징으로 노아 개인의 의로움을 중심으로 한 혼인과 혈육의 가족공동체였음을 강조한다.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탈주공동체라고 이름붙인 저자는 바벨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는 성원들이 하나님의 강제적인 개입으로 타율적으로 흩어진 반면, 아브라함 일가는 대강의 방향을 따라 여러 종족들을 만나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주체적인 탈주의 여정을 선보였음을 언급한다.
아브라함 공동체의 터전은 그의 지속적 탈주를 통한 예비답사와 취득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아브라함은 그의 토대 다지기 방식이 약탈과 쟁취가 아니라 호의적 환대, 증여, 구체적인 거래를 통한 매매방식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그 이웃들에게 강요함으로써 어떠한 종교적 갈등도 유발하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이삭에게서는 정주공동체, 야곱에게서는 유랑공동체의 관점으로 계속해서 구약을 풀어 나가고 있다.
이어 출애굽 사건 이후에 광야공동체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에 규정된 토라의 제반 법규들이 광야공동체의 삶에 얼마나 실제적으로 실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문을 품고있다고 언급한다.
사사시대 속에서 룻기를 언급하면서 이 모든 행복한 결말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기획하고 주도한 인물은 보아스가 아니라 나오미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왕조국가 시대에는 공동체가 해체될 위기였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여호와의 왕권이 아닌 인간 왕권의 수립에 대한 사무엘의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왕권체제를 용인했다는 점에서 사무엘의 사명이 실패로 끝났다는 견해를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는 사울과 다윗의 국가공동체의 차이점을 언급한다. 사울이 왕국건설에 공을 세운 자들과 혈족을 중심으로 권력을 독점하는 위로부터의 통치방향을 추구했다면 다윗은 제 가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밑바닥의 소외된 백성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그 외연을 확대해 나가는 아래로부터의 통치 노선을 견지한 것으로 소개한다.
계속해서 저자는 디아스포라 시대 회당공동체에 대해 언급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주전 587년에 닥친 유다왕국의 멸망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는 가장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희랍어 ‘쉬나고게’에서 비롯된 ‘회당’이라는 말은 기실 장소적 개념에 앞서 예배나 기도 등의 종교적 목적을 위해 회집한 사람들의 모임 자체를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회당이 출현한 최초의 시점은 불확실하지만 팔레스타인에서 회당이 본격적인 건축물로 설립되기 시작된 것은 성전이 파괴된 이후 대략 100년 후쯤으로 추정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제2성전기에 걸쳐 예루살렘에 365개의 회당이 존재했다고 한다. 탈무드에 따르면 기독교 선교가 활발하던 1세기에 이르러 당시 베스파시안 로마 황제 때 예루살렘에만 480개의 회당이 존재했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일대에 포진한 회당공동체는 일상을 영위하는 지역의 거점을 중심으로 공동체적 신앙생활을 추구하려는 현실적 방안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회당은 한동안 유대교의 변두리 파당으로 인식되었지만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의 태반을 제공한 것도 회당체제였음은 물론이다.
갈릴리 지역에서 태동한 예수운동이 선교적 활력을 얻어 보편적 세계종교로 발돋움할만한 체제의 기반이 되어 준 것도 디아스포라 유대교의 회당공동체를 빼어놓고는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
이상이 구약 공동체에 대한 부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쳐 놓은 부분을 몇 군데 골라 타이핑을 하는데도 꽤 시간이 걸린다.
보수적인 교회에서 목사님 설교만 주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 책은 소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 많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한국교회 공동체의 미래라는 측면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저작물임은 분명해 보인다.
성경의 문자주의를 강조하는 보수측에서는 무조건 읽지 말라는 전제주의적 사고보다는 이를 능가하는 논문연구에 더욱 투자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Stone Choi.